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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망할거야"

두 사람은 머리가 히긋히긋했지만 주는 인상은 전혀 달랐다. 키가 작은 한 사람은 머리를 2대8로 넘겼지만, 잔머리가 군데군데 솟았다. 개구쟁이 같은 얼굴이지만 잔주름이 많아서 그런지 산전수전을 겪는 듯한 얼굴이었다. 반듯한 정장을 입으면 재기넘치는 중년신사로 보일 법도 한데, 그는 굳이 시커먼 비닐소재의 바람막이 하나를 대충 걸치고, 골덴바지에 운동화를 꾸겨신었다. 하지만 안경알만큼은 새 것처럼 반짝거렸고, 줄담배를 피운 탓인지 연신 크게 기침을 하며 가래를 끓었다. 
다른 사람 역시 나이에 비해 머리가 일찍 하얗게 샜다. 하지만 큰 키에 굵은 뼈대의 체격을 가졌다. 눈코입이 커다랗고,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낮은 목소리는 절로 신뢰감을 줬다. 외투와 셔츠, 바지를 단정하게 맞추어 입었지만, 아저씨들이 입는 통큰 바지는 아니었다.


아무튼 두 사람은 머리가 히긋했고, 나와 대낮부터 대구탕을 앞에 놓고 소주를 들이켰다. "그래, 자네는 젊으니깐 대한민국을 잘 이끌라고", "아직 많이 배워야할 때구먼" 따위의 꼰대같은 말을 내뱉어도 거북하지 않을 선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훈계를 고분고분 듣고 싶어졌다.


하지만 예상은 깨졌다. "이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며 우리는 건배를 했다. 딱 1병만 먹자고 했는데, 어느새 2병이 됐다. 잔이 돌고 돌았다. 잔이 돌면서 깨달았다. 사실 우리 셋은 그 동안 비슷한 이유로 서러웠다는 걸.


"이 나라는 말이 안 통해. 그래서 망할 거야."


우리는 다음 달에 거하게 취하기로 약속하고난 뒤 서로서로 손을 잡아 몇 번 흔들고 헤어졌다.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졌는데, 햇빛은 어제만큼 유난히 뜨거웠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담배를 푹푹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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