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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초등학교,2012년 5월6일.


#1.

 나는 쉽게 단정짓는 것에 익숙하다. 그게 편하다. 하나의 고정된 기준이 있다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며, 왜 살아가는 지에 대한 판단과 선택이 쉽기 때문이다. 늘 그렇지만, 악의는 없다. 하지만 내 의도의 선악여부와는 상관없이, 사람을 쉽게 단정하는 것은 분명히 불쾌한 일일 것이다. 


#2.

 누구나 다 삶을 살아가는 기준이 있다고 믿는다. 필자처럼 빠른 시간 내에 기준을 정하고 행동하고, 깨지는 스타일이 있을 것이고 혹자는 칠흑의 어둠 속에서도 오랜 기간 확신할 수 있고 깨지지 않을 기준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방황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쉽게 단정짓는 사람에게 방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쉽게 기준을 정하는 만큼, 그 기준은 늘 일찍 위기에 봉착하며, 자신의 신념은 다시금 무너지는 경험을 겪기 때문이다. 


#3.

2012.5.6. 삼성초등학교


 머리가 복잡할 때 달리기를 하면 마음이 개운해진다는 한 선배의 말을 듣고 나는 작년과 올해 초 종종 우리 동네에 있는 삼성초등학교 운동장을 달리곤 했다. 비오는 날 온 몸이 푹 젖을 때까지 달리고 집에 들어와 샤워를 했을 때는 마치 지난 삶을 용서받은 듯, 내가 지은 죄들이 씻겨내려 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오늘은 친구들과 이 운동장을 달렸다. 마음이 심란해서는 아니고, 그저 한 친구가 제의한 놀이였을 따름이었다. 오늘은 달리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철없는 아이마냥 뛰고 있으니 그저 순수한 어린애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느낌, 다른 맥락으로, 힘들었지만 즐거운 달리기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 시간의 무게는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후회는 너무나 많이 쌓여있고, 벅찬 감정에 충동적으로 저지른 실수와 잘못들은 내 마음과 머리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실수와 잘못은 할 수 있다만, 그것들을 감당하고 디딤돌로 삼아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은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삼성초등학교에서 느꼈던 동심과 순수한 나는, 이제는 없다. 다시금 지난 잘못들이 덕지덕지 쌓여있는 커다란 벽이 내 앞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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