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후천적 생일 증후군 2




후천적 생일 증후군



글 최한진




신호등이 깜빡였다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혹시 내가 잊고 있던 약속이 있는 건 아닌지 잠시 떠올렸다


집으로 다시 걸음을 되돌리는데,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낯익은 밤거리엔 나를 부르는 곳이 딱히 없었다




어릴 적 일이었다


갈 길 바쁜 단어들로 빼곡한 팩스지 두 장이 있었다


「하늘이 너의 탄생을 축복하고 있나봐, 겨울비가 내리고 있어」


사실 그 편지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이 네 생일인 걸 깜빡하고 그냥 나와서 미안해」


그래서 더 슬펐단 사실을 당신은 몰랐으리라 생각한다


대개 외로운 편지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는 종종 깔깔댔다


「처음부터 외롭게 태어난 사람은 없으니」


외로움은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라고 했다


너는 「외로움」이 「심심함」과 비슷한 녀석이라 했다


나는 나중에서야 너로 인해 그것들을 학습했다


너는 모르는 일이다




가끔 니 얼굴과 니 목소리가 떠오르긴 했었다


우습게도, 그 깔깔대던 웃음소리만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ㅡ 비교조차 못할 정도로 훨씬 많은데 ㅡ


너가 내게 나쁜 표정을 지었던 날보다 환하게 웃던 날이 훨씬 많은데


니 웃음소리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너가 모르는 일이 많다




쌀쌀했다


현관문을 지나 우산을 풀었다


맥없이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칫솔이 쓰리게 느껴져 거울을 보니 혀가 신호등처럼 빨개져 있었다


눈이 뻑뻑하고 콧물이 났다


볼따구가 가렵고 귀가 멍멍했다


아팠다


창 밖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또 다시 「그것」이 돌아왔다




글 최한진



후천적 생일 증후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중(作中)의 매너리즘  (0) 2016.12.28
아니꼬움에 대하여  (0) 2016.12.28
2014. 10. 30  (0) 2014.10.31
lol archive by Arteta08  (3) 2014.02.11
나와 당신들을 위한 이야기  (3) 2013.09.08